
요즈음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엄청난 변화로 모든 분야에서 경계의 울타리가 점점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이제 자의로든 타의로든 다른 세계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해 나갈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한의계에 대두된 “표준화(standardization)”라는 명제는 가장 중요한 의료적 관심사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매우 큰 어려움을 안기는 분야가 되었다. 한의학의 변증 및 진단 체계와 서양의학의 진단 알고리즘 간의 간극이 이렇게까지 컸던가, 표준화의 틀에 들어가지 못해 우리가 배운 지식이 한낱 종이조각 위 오징어 먹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이런 고민의 돌덩어리들을 안고 계속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무기력감을 필자 개인적으로 느낀 적도 많다. 그러던 중에, 『한의원의 인류학: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김태우 저, 돌베개, 2021)를 접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 우리가 왜 (의료)인류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사실 필자는 인류학이 과거에 좀 더 무게추를 두는 학문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며, 이것이 완전한 오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학은 곧 인간과 인간집단의 양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궁구하는 학문인데, 절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매 순간마다 살아 숨쉰다. 그리고 인류학과 의학의 연관성에 대해 굉장히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건강과 질병 상태에 대한 정의와 범위, 과학·종교·사회문화적 영향으로 인한 주요 분야의 변천사, 의학이론의 발전과정과 시대 상황 및 철학 발전과의 연계 등을 생각해보면 두 분야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이 책은 한의사들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한의원과, 그에 대비되는 병원의 공간 구조에 대한 차이를 서술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낯선 도입이지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해보면 그 전개가 납득이 된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생활이 시작되는 터전이고, 그 공간의 주인이 가진 철학이 자연스럽게 담기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환자와의 소통이 더 원활하도록, 일방적인 방향성을 가진 화살표가 바닥에 그어지지 않고 유동성 있는 쌍방 소통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공간임을 이 책의 초입부에서 강조한다. 한의사들의 진료실은 좁게 보면 몇 평 밖에 되지 않지만, 소통의 영역을 보면 그 영역은 훨씬 넓어지는 것이다.
이에 이어서 이 책에서는 의료인과 환자 간의 대화 방식의 차이, 진단 방법의 차이, 동서양의 의료이론 발전 양상의 차이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이를 확장해보면 피아(彼我)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대한 서술로 이어진다. 서양에서는 타자에 대해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target)이 고정되어 있는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나와 타자가 만날 때 발생하는 ‘출렁임’과 유동성에 초점을 둔다. 피아, 타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극명히 나타낸다고 볼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즉 전자는 타자를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의 개성이 꼭 드러날 필요는 없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나’의 개별성도 중요한 것이다. “醫者는 意也라”는 문구를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한의학에서 치료 수단으로 대표적으로 쓰이는 침과 한약에 대한 고찰까지 확장된다. 사실 한의과대학에서 경락학설, 기미론 등 이에 관한 이론을 배우고, 졸업 후 임상에서 이를 자주 써 본 입장이었는데도 이들을 그저 ‘물질’로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 저서에서 해석한 방식을 보고 그간 나의 사고 체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경혈과 침, 본초도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어떤 병증과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가에 따라 그 응용은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단들은 어떤 고정된 병인을 과녁으로 삼아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체의 생리·병리적 흐름인 기(氣)에 영향을 미치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것이 근·현대 서양의 naturalism과 비교되는 analogism인 것이다.
물론 이 책이 현재 한의학계의 천태만상을 모두 짚어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박이 들어올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 분야의 구성원이 아닌 타인의 시선이 주요하기 때문에, 신선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한 현실적 이해가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체와 인간에 대한 의료인류학적 관점이 백이면 백 모든 분야에 딱 맞아떨어지게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흐름을 알아보는 것은 좋은데, 현재 우리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나와있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딱 맞아 떨어지는 객관식 문항 양식의 해결책을 여기서 찾으면 안 된다. 이 저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를 꼽자면 “흐름”이다. 흐름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특정한 한 시점의 주요한 방향이야 겉보기에는 정해져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흐름에는 오직 한가지 방향, 한가지 세기의 힘만 작용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주요한 방향이라는 것도 고정된 한 시점의 이야기이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때 당시의 대세의 흐름에 본인이 따르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주하지도 말고, 다르게 가고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위축되지도 않아야 한다. 다만, 어떤 위치에 있든 나의 관점이 뚜렷한지, 내가 나의 지식을 펼쳐내는 방향은 올바른지에 대한 자아 성찰은 항상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작은 희망사항을 말미에 추가하자면, 다음에는 동아시아와 서양 간의 비교가 아닌, 한 동아시아 국가 내에서의 의료 변천사를 더욱 면밀히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물론 두 집단의 인류학적 차이는 대립이 아닌 “병치”의 개념이지만, 은연중에 근·현대 동아시아의 역사는 서양의 문물이 흡수되는 과정에서 근대 서양철학의 흐름에 엮여 인식이 되어온 만큼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에 대해 동아시아 국가의 능동적인 의료인류학적 변화의 면모에 집중된 저서가 향후 출간되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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