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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fluence of Acupuncture from Chosun Dynasty on Japanese Acupuncture Bronze Men in Edo Period - Recently Acquired Dongin K-1, Dongin K-2, and Dongin K-3 are at the Core -
에도시대 동인에 나타난 조선 침구학의 영향 -최근 입수한 동인 K-1과 동인 K-2, 동인 K-3를 중심으로-
Korean J Acupunct 2018;35:210-225
Published online December 27, 2018;  https://doi.org/10.14406/acu.2018.030
© 2018 Society for Meridian and Acupoint.

Sangwoo Ahn1 , Yunghwan Park2
안상우1, 박영환2

1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2Sijoong Korean Medicine Clinic
1한국한의학연구원,
2시중한의원
Correspondence to: Yunghwan Park Sijoong Korean Medicine Clinic, 11-1 Jahamun-ro, Jongno-gu, Seoul 03041, Korea Tel: +82-2-736-3654, Fax: +82-2-736-3123, E-mail: ocger2@gmail.com
Received November 8, 2018; Revised December 7, 2018; Accepted December 7, 2018.
This is an open 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Abstract

Objective:

This research is aimed to compare the three sets of Dongin(K-1, K-2, K-3) to Chosun and Chinese acupuncture bronze men, and through literature review of acupuncture points and meridians to see how acupuncture of Chosun affected the Japan’s acupuncture bronze men.

Methods:

Using 3D scanning, we compared the location of acu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of the three sets of Dongin to those of Chosun and China. We also compared the meridians and acupuncture points of the three sets of Dongin to Doningyosodo.

Results:

Dongin K-1 and K-2 have all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ChimGuemDongIn. Their heads were made about 30% larger than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and their necks were shortened to get the right proportion. Their gender was not specified. Their hands were sticking forward, and knees were slightly bent, and the arms and legs were carefully crafted to record acupuncture points. Dongin K-1 and K-2 marked the meridians and acupuncture points according to Doningyosodo. In particular, BL39 in Dongin K-1 and K-2 has been marked as in ChimGeumDongIn, which is considered to have come from DongUiBoGam. These characteristics do not exist in Chinese acupuncture bronze men.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was marked on the right side of the Dongin K-3, while the eight extra meridians were marked on the left side.

Conclusions:

In summary, Dongin K-1 and K-2 indicate the Japanese history of acupuncture which may have influenced from Chosun.

Keywords: Dongin (Doningyo acupuncture bronze man), ChimGuemDongIn, BL39 (Wiyang), Korean medicine, medical history, DongUiBoGam
서론

經穴과 經脈을 기록하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돌, 청동, 나무, 종이 등 여러 가지 재료로 제작한 인체 모형에 3차원으로 표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종이, 돌과 같은 평면에 2차원으로 그리는 것이다. 또 經穴과 經脈을 나타내는 방법도 經絡圖와 經穴圖의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經絡圖는 일종의 ‘개념도’로 그림을 통해 인체 상하내외 특정부위 사이에 발생하는 연관관계의 법칙을 표현한 것1)인데 經脈, 絡脈을 위주로 그 흐름을 상세히 표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經穴도 표시하는 것이다. 經穴圖는 腧穴의 위치를 2차원으로 표시한 그림인데, 經穴을 12經脈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기도 한다. 고대에는 이를 ‘明堂圖’라고 하였는데, 銅人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여 ‘銅人圖’, ‘銅人明堂圖’라고도 하였다. 經穴圖는 經絡圖와는 다른 그림이었지만, 宋 이후에는 『十四經發揮』의 十四經穴圖처럼 經穴圖과 經絡圖를 하나의 그림에 함께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후대로 내려오면서 본래의 목적에서 발전하여 經穴圖와 經絡圖를 포함하는 銅人도 만들게 되었다. 예를 들어 中國國家博物館에서 소장하고 있는 鍼灸銅人은 經穴만 표시한 銅人이며, 우리나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鍼金銅人은 經穴과 經穴圖를 표시한 대표적인 銅人이다. 日本의 東京國立博物館의 銅人形 C-542, 銅人形 C-543, 銅人形 C-544, 國立東京科學館의 銅人, 하리큐뮤지움(はりきゅうミュージアム)의 佐賀竹田家伝銅人形과 知新流銅人形, 彦眼御殿醫伝銅人形, 松本藩中村家伝銅人形, 스기야마 와이찌 기념관(杉山和一記念館)의 銅人形 등은 모두 經絡圖와 經穴을 함께 표시한 銅人이다.

日本의 醫學은 서기 420년 百濟에서 德來가 日本 본토로 건너가서 자손들이 대대로 나니와(難波)에 거주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2). 이후 壬辰倭亂 때 朝鮮에서 活字와 200여권이 넘는 의학 서적이 전해졌으며3) 1607년부터는 조선통신사에 良醫와 醫員이 항상 수행하여 韓日 의학 교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는데4), 17∼18세기 당시 朝鮮의 鍼灸學은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日本의 鍼醫들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良醫와 醫員에게 朝鮮의 鍼法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그 내용을 問答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兪穴과 經絡 이론, 鍼灸기법, 鍼의 모양과 쓰임, 鍼灸의 적응증과 질환에 따른 치료 방법5) 등 鍼灸學의 기초이론부터 임상까지 빠짐없이 망라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許任의 『鍼灸經驗方』이 1725년, 1778년 2번이나 覆刻6,7)되는 등 日本의 鍼灸學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에도시대 당시 만들어진 일본의 銅人에는 朝鮮에서 전해진 鍼灸學의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저자가 근간에 입수한 파손된 日本 銅人 3具의 외형과 骨度를 측정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고 朝鮮과 中國의 銅人과도 비교해보고자 한다. 또 표면에 기록한 經穴과, 經脈을 문헌 중심으로 고찰하여, 朝鮮의 鍼灸學이 日本의 銅人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 방법

본 논문을 위해 근간에 입수되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3具의 日本 銅人에 대해 임의로 명칭을 부여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銅人’이라는 명칭에 한국을 뜻하는 K와 숫자를 붙여 정하였다.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日本 銅人을 ‘銅人 K-1’이라 하고, 팔과 다리가 파손되어 분리된 日本 銅人을 ‘銅人 K-2’, 마지막으로 크기가 작고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몸통이 앞뒤로 벌어진 日本 銅人을 ‘銅人 K-3’라 하였다.

鍼灸銅人의 명칭은 韓ㆍ中ㆍ日에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日本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료의 재질에 관계없이 銅人을 ‘銅人形’이라 하였다. 몇몇 日本의 銅人들은 단순히 ‘銅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銅人은 ‘鍼金銅人’이라 하는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확정한 고유명사이다. 중국에서는 대체로 ‘∼鍼灸銅人’으로 명칭을 정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일반적인 鍼灸銅人을 지칭할 때는 ‘銅人’이라 표기하고 특정 銅人을 지칭할 때는 ‘∼銅人形’이나 ‘∼銅人’ 등 고유명사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문헌 자료에 나타나지 않은 朝鮮 鍼灸學의 영향성을 유물의 실측과 상세한 조사를 통해 발견, 입증해 나가는 것이다.

원활한 연구 활동과 자료의 보존 및 銅人의 파손을 막기 위해 NEXTENGINE 3D SCANNER, 3DF Zephyr로 3D 스캔을 하였다.

본론

1. 日本 銅人 3具의 특징과 구조

1) 日本 銅人 3具의 구조와 제작과정

日本 銅人 3具는 어느 정도 손상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내부의 형태를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였다. 日本 銅人 3具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외부에 단단하고 하얀 호분(胡粉)이 칠해져있으며 그 위에 經穴과 經脈, 經穴名이 표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5∼6겹의 와시(和紙)로 되어 있는데 풀을 먹여 단단하게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속은 비어있다.

이렇게 종이로 골격을 만들어 호분을 입힌 인형은 에도시대 전기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였다. 1690년에 발행한 『人倫訓蒙図彙』(じんりんきんもうずい)에서는 이러한 인형을 만드는 사람을 도닌교시(胴人形師)라고 하였는데,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향토완구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카가와현(香川県) 다카마쓰시(高松市)의 다카마스 하리코(高松張子), 후쿠시마현(福島県) 아이즈(会津) 지방의 아카베코(赤べこ), 돗토리현(鳥取県) 구라요시(倉吉市)의 하코타인형(はこた人形)8) 등이 있다. 일본 전통인형들의 제작법은 거의 비슷하다. 모두 일정한 틀에 종이를 풀에 발라 붙인 다음, 종이가 마르면 절개해서 틀을 빼내고, 절개 면을 풀로 붙인 다음 아교로 갠 호분으로 밑칠하고 각종 물감으로 채색하는 것이다. 이를 하리코(張り子)라고 한다.

日本 銅人 3具도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일정한 틀에 재활용한 와시(和紙)를 풀로 개어 바른 다음, 앞뒤로 나누어 절개하여 틀을 제거한 뒤 절개 면을 다시 풀로 붙이고, 그 위에 호분으로 밑칠하고 물감으로 經穴, 經脈, 穴名을 표시하였다. 머리와 몸통과 다리는 1개의 틀로 만들고 두 팔은 각각 다른 틀로 만들었다. 두 팔은 따로 만든 다음 풀로 몸통에 붙였다. 호분으로 밑칠을 할 때는 몸통과 붙어있는 상태에서 한 번에 칠하였다. 손가락은 대나무를 잘라 만들어 손에 꽂았으며, 두 발에는 돌을 넣어 무게중심을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현재 일본에는 청동, 나무, 종이로 제작한 銅人이 전해오고 있는데, 종이로 제작한 銅人은 제작단가가 제일 저렴하고 만들기 쉬워서 당시 많은 수요가 있었을 것이다.

2) 日本 銅人 3具의 보존 상태

銅人 K-1은 임시로 만든 종이상자에 보관되어 있었다. 솜과 신문지의 무게를 측정해보니 모두 468 g이었다. 銅人 K-2, 銅人 K-3은 일본에서 제작한 나무상자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상판은 미닫이 식으로 열 수 있으며, 상판을 열면 솜으로 가득 찬 상태에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銅人 K-1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었는데, 다만 오른발과 머리, 목 부분은 파손부위가 최근 석고로 보수한 상태이다. 오른쪽 다리 여구(LR5) 부근의 파손된 구멍으로 확인한 결과 4겹의 와시(和紙)를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銅人 K-1의 무게는 576 g이다(Fig. 1).

Fig. 1.

3D scanning images of Dongin K-1.

Front, side and back.


銅人 K-2는 양 팔과 무릎이하 다리부분이 파손되어 몸체와 분리되어 있다. 양 팔과 양 다리의 와시(和紙)는 상당부분 벌레를 먹고 부식되어 호분만 겨우 남아 부분적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른쪽 목과 어깨, 엉덩이 아래와 왼쪽 허벅지 뒤쪽은 석고로 형태를 잡아 보수한 상태다. 몸통의 호분에도 벌레가 뚫은 조그마한 검은 구멍이 상당 수 있다. 4겹의 와시(和紙)를 사용하였다. 銅人 K-2는 무게가 532 g인데 몸통의 무게는 385 g이고, 왼팔의 무게는 33 g, 오른팔의 무게는 38 g, 오른발, 아래다리의 무게는 60 g, 왼쪽 아래다리의 무게는 16 g이었다(Fig. 2).

Fig. 2.

3D scanning images of Dongin K-2.

Front, side and back. (Left) Full body of Dongin K-2 (Right).


銅人 K-3은 앞의 두 銅人보다는 형태가 많이 파손된 상태다. 몸통의 앞뒤가 서로 반쯤 떨어져 있으며, 머리는 몸통에서 분리되어 있고, 양 팔은 파손되어 분리되어 있고 왼쪽 아래다리와 오른다리 전체는 심하게 파손되어 있다. 왼발은 형태가 남아있다. 팔은 9겹의 와시(和紙)로 형태를 만들고 몸통은 3겹의 와시(和紙)로 만들었다. 銅人 K-3은 무게가 140 g이다. 몸통의 무게는 72 g, 왼팔의 무게는 18 g, 오른팔의 무게는 3 g, 오른발은 내부에 발모양으로 잘 다듬어진 돌이 들어있어서 그 무게가 47 g이나 나갔다. 왼발은 분실되었는데 왼발도 역시 돌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얼굴의 형태, 눈썹모양 등은 제작기법은 銅人 K-2와 동일하였다(Fig. 3).

Fig. 3.

Full body of Dongin K-3.

(Left-Front, Right-back) (1) A Broken part of right arm. (2) Unable to identify part.


나무상자와 솜 속에는 銅人 K-1, 銅人 K-2, 銅人 K-3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호분(胡粉) 조각이 여럿 있었는데, 이 조각에는 경혈, 경맥이 그려진 것도 있다. 이를 모두 추려 무게를 측정하니 모두 37 g이었다. 銅人 3具 모두 밑칠 한 호분(胡粉)의 두께는 0.65 mm이며, 4겹으로 접착한 와시(和紙)의 두께는 대략 0.3 mm∼0.9 mm 정도이다. 호분과 와시를 합한 두께는 대략 1.45 mm 정도이다.

종이로 만든 銅人은 銅이나 나무로 제작한 것에 비해서는 습기, 해충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쉽게 삭는다는 단점이 있다. 또 銅人을 제작할 때 내부 틀의 형태를 와시(和紙)에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얇은 와시를 4겹만 붙였다고 추측하는데, 이러한 제작기법의 한계 때문에 종이 銅人은 외부 충격에 매우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2. 日本 銅人 3具와 『靈樞ㆍ骨度第十四』의 骨度 비교

鍼灸銅人을 제작하려면 骨度에 따라 골격의 크기를 정하고 經穴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 따라서 銅人 K-1, 銅人 K-2, 銅人 K-3도 『靈樞ㆍ骨度第十四』의 骨度法을 충실히 반영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銅人 K-1, 銅人 K-2, 銅人 K-3의 骨度法 측정은 다음의 순서를 따랐다(Table 1).

Comparison of the Measured Values of Dongins K-1, K-2, and K-3 to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of Lingshu

The Parts of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LingshuConversion Figure (cm)Actual Measurement Value (cm)

K-1K-2K-3
1. Hight7chi5cun8181-49 (?)
2. Circumference of Head2chi6cun28.0831.83124.5
3. Circumference of Thorax4chi5cun48.63636-
4. Circumference of Abdomen4chi2cun45.36333326
5. Anterior Hair Line to Posterior Hair Line1chi2cun12.9618.51713
6. Anterior Hair Line to Chin1chi10.812.511.410
7. Thyroid Cartilage to CV224cun4.322.62.4-
8. CV22 to CV159cun9.721111.5-
9. CV15 to CV88cun8.6479.35.6
10. CV8 to CV26.5cun7.026.554
11. Left SP12 to Right SP126.5cun7.0276.84
12. CV2 to Superior Medial Condyle of Femur1chi8cun19.441616 (?)7
13. Superior Medial Condyle of Femur to SP93.5cun3.783.6--
14. SP9 to KI31chi3cun14.0411.5--
15. KI3 to Sole3cun3.244.5--
16. BL40 to KI41chi6cun17.2814--
17. KI4 to Sole3cun3.242.5--
18. ST8 to ST121chi10.812.514.5-
19. Axillary Fossa’s Length4cun4.3244-
20. HT1 to LR131chi2cun12.9612.612.5-
21. LR13 to Hip Joint6cun6.4856.5-
22. Hip Joint to Knee1chi9cun20.5216.5--
23. Knee to BL601chi6cun17.2814--
24. BL60 to BL643cun3.242--
25. BL64 to Sole1cun1.081--
26. GB12 via GV17 to GB129cun9.72-55
27. TE21 via GV25 to TE211chi3cun14.0414.515.512.5
28. Left SI18 to Right SI187cun7.56553.5
29. Left ST17 to Right ST179.5cun10.2666.8-
30. CV2 to GV16.5cun7.0266-
31. Length of Foot1chi2cun12.9611-8.5
32. Width of Foot4.5cun4.864.24.2-
33. GV14 to Elbow1chi7cun18.361517 (?)-
34. Elbow to TE41chi2.5cun13.599.3-
35. TE4 to TE24cun4.325.64.1-
36. TE2 to PC94.5cun4.853.34.1-
37. Posterior Hair Line to GV142.5cun2.72.5--
38. GV14 to GV13chi32.42727-
39. Each Size of T1 to T71.41cun1.521.20.9-
40. GV14 to GV99.87cun10.658.77.5-

① 『靈樞ㆍ骨度第十四』에 제시한 7尺5寸의 身長을 銅人 K-1의 크기인 81 cm로 환산했다. 그 결과 1寸을 1.08 cm로 하였다. 銅人 K-3의 1寸은 0.65 cm로 환산하였다.

② 1寸을 1.08 cm로 하여 身長을 제외한 『靈樞ㆍ骨度第十四』의 39항목 수치를 cm 단위로 환산하여 소수점 2자리까지 변환하였다. 이를 “환산수치(Conversion figure)”라고 하였다.

③ 銅人 K-1, 銅人 K-2, 銅人 K-3의 측정 가능한 부분의 길이를 『靈樞ㆍ骨度第十四』에서 제시한 대로 측정하였다. 이를 “실측치(Actual measurement value)”라고 하였다.

④ 환산수치와 銅人 3구의 실측치 40항목을 비교 검토하였다.

⑤ 완전한 파손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항목은 ‘-’표시를 하여 빈칸으로 두었다.

⑥ 부분 파손으로 측정은 가능하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측정값 옆에 ‘(?)’로 표시하였다.

측정 결과 銅人 K-1은 신장이 81 cm이다. 머리둘레는 骨度法에 비해 3.72 cm, 전발제에서 후발제까지의 길이는 5.54 cm, 전발제에서 턱까지의 길이는 1.3 cm 길었다. 또 耳門사이의 길이, 兩顴의 간격은 『靈樞』에서 제시하는 骨度法과 거의 같았다. 즉, 머리 윗부분은 骨度法보다 조금 크게 제작하고 대신 목의 길이는 1/2 가량 줄였으며, 얼굴은 骨度法에 맞춰 제작하였다.

銅人 K-1의 가슴둘레는 『靈樞ㆍ骨度第十四』에서 제시한 수치보다 12.6 cm이나 크게 부족했으며, 허리둘레도 12.36 cm나 부족했다. 그러나 腋에서 季脇까지, 缺盆에서 橫骨까지의 길이는 골도법과 거의 비슷했다. 四肢는 대략 骨度法보다는 조금 작게 만들었으며, 膂骨에서 尾骶까지의 길이는 5.4 cm정도로 많은 차이가 났다.

銅人 K-2는 四肢가 파손되어 몸체에서 분리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身長은 무릎아래 다리가 완전히 파손되어 알 수 없었으며, 백회(GV20)에서 회음(CV1)까지의 길이는 44.5 cm로 銅人 K-1보다 2 cm 길었다. 머리를 骨度法보다 크게 제작한 점, 몸통을 가늘게 제작한 점도 銅人 K-1과 같았으며 크기도 같았다. 그러나 銅人 K-1에 비해 얼굴의 크기인 백회(GV20)에서 염천(CV23)까지는 0.5 cm 짧았으며, 목의 길이인 염천(CV23)에서 천돌(CV22)까지는 1.5 cm, 복장뼈의 길이는 0.8 cm 길었다. 복장뼈 아랫면(岐骨)에서 회음(CV1)까지의 길이는 0.2 cm 길었다. 백회(GV20)에서부터 腋下, 유중(ST17)과 脇下까지의 위치는 銅人 K-1과 같았다. 또한 銅人 K-2의 上肢는 견우(LI15)에서 중충(PC9)까지의 길이가 32 cm로 銅人 K-1과 같았으며, 銅人 K-2의 下肢는 원형이 많이 파손되어 측정 할 수 없었다(Fig. 4). 銅人 K-1, K-2는 공통적으로 머리를 약 30% 크게 제작하고 목을 짧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제작 방법은 鍼金銅人의 骨度에서 동일하게 찾을 수 있었다9).

Fig. 4.

The size comparison of Dongin K-1 and Dongin K-2.


銅人 K-3는 앞가슴 윗부분과 어깨부분이 완전히 파손되고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있고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완전히 파손되었기 때문에 머리, 가슴, 배와 허벅지, 왼쪽 발만 骨度를 측정할 수 있었 다. 銅人 K-3의 백회(GV20)에서 턱까지 길이는 10.4 cm이며,𩩲骬에서 천추(ST25)까지의 길이가 5.6 cm, 천추(ST25)에서 橫骨까 지의 길이가 4 cm이다. 身長은 대략 49 cm로 銅人 K-1에 비하여 63% 정도 크기였다. 머리 높이는 銅人 K-1, K-2에 비해 72%로 작게 만들었으며 머리둘레는 骨度法에 비해 약 45% 크게 만들었다.

3. 日本 銅人 3具의 經脈과 經穴

1) 銅人 K-1의 經脈과 經穴

銅人形 K-1에는 14經脈과 經穴이 표시되어 있다. 腹部와 下肢의 經穴과 經脈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좌우를 서로 비교해 보면 經穴과 經脈이 서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즉, 좌측은 經穴圖와 經脈圖가 혼합된 經脈의 흐름이지만, 우측은 經穴圖를 표시하고 있어서 현재와 비슷한 經脈의 흐름으로 표시하고 있다.

銅人 K-1의 좌측 經脈은 대체로 『十四經發揮經絡兪穴骨度之圖』10), 『骨度正誤圖説』11), 『仮名讀十四經治方』12), 『十四經輸穴指南』13)의 銅人形總圖를 표현하고 있다. 銅人形總圖(どうにんぎょうそうと:도닌교소도)는 『十四經發揮』의 十四經經脈圖에서 발전하여 좀 더 복잡한 經脈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는 經脈圖이다. 예를 들어 좌측의 足太陰脾經脈은 『十四經發揮』의 순행과 동일하게 충문(SP12)→부사(SP13)→중극(CV3)→관원(CV4)→복결(SP14)→대횡(SP15)→하완(CV10)→중완(CV12)→기문(LR14)→일월(GB24)→복애(SP16)→식두(SP17)의 순서로 흐르고 있으며(Fig. 5), 足少陽膽經脈은 경문(GB25)→대맥(GB26)→오추(GB27)→유도(GB28)→거료(GB29)→상료(BL31)→중료(BL33)→장강(GV1)→환도(GB30)의 순서로 흐르고 있다. 足太陽膀胱經脈의 경우는 위중(BL40)→환도(GB30)→질변(BL54)의 순서로 환도(GB30)를 경유하여 經脈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Fig. 5.

Dongin K-1 and Doningyosodo of Kotsudoseigozusetsu.

(1) SP12, (2) SP13, (3) CV3, (4) CV4, (5) SP14, (6) SP15, (7) CV10, (8) CV11, (9) SP11, (10) GB24, (11) SP16, (12) SP17.


하지만 좌측 위양(BL39)의 위치는 銅人形總圖와는 다르며 『十四經發揮』, 『鍼灸資生經』, 『類經圖翼』, 銅人形 C-54314), 銅人形 C-54415) 등과 같이 허벅지 중간의 은문(BL37) 옆에 표시하고 있다(Fig. 6).

Fig. 6.

Gallbladder Meridian of Dongin K-1 and Doningyosodo of Kotsudoseigozusetsu.

(1) GV1, (2) GB30, (3) BL54, (4) BL31, (5) BL33.


銅人 K-1의 우측 經脈은 『類經圖翼』의 十四經經脈圖와 같이 經脈圖를 제외한 明堂圖를 표현하고 있는데 현대의 經穴圖와 거의 같은 형태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足太陽膀胱經脈의 순행은 좌측과 마찬가지로 위양(BL39)→환도(GB30)→질변(BL54)의 순서로 흐르고 있으며, 우측 위양(BL39)은 銅人形總圖이나 WHO표준경혈위치와 동일하게 위중(BL40)의 바깥쪽에 표시되어 있다(Fig. 7).

Fig. 7.

Dongin K-1 and Jushikeihakkikeirakuyuketsukotsudonozu.

(1) BL39, (2) GB30. Bladder meridian and Gallbladder meridian meet at GB30. (3) BL39 of Shisijingfahui and Leijing.


또 좌우의 手足三陽經脈은 모두 ‘頭部 ↔ 결분(ST12) ↔ 대추(GV14)↔手足’을 지나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銅人 K-1의 經穴과 穴名은 모두 黑色으로 표시되어 있다. 經脈은 臟腑의 五行配屬에 따라 銅人 K-2와 유사하게 채색하였지만 변색이 많이 되어 육안으로 색상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고 어두운 색은 모두 黑色과 비슷하였다.

2) 銅人 K-2의 經脈과 經穴

銅人 K-2의 經脈과 經穴은 좌우가 같으며 『十四經發揮經絡兪穴骨度之圖』, 『骨度正誤圖説』, 『仮名讀十四經治方』, 『十四經輸穴指南』의 銅人形總圖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銅人 K-1의 좌측과 동일한 경맥 순행을 표시하고 있으며, 위양(BL39)은 WHO표준경혈과 같은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銅人 K-2의 十四經脈은 五行配屬에 따라 經穴과 經脈의 色을 구별하여 표시하고 있는데 『骨度正誤圖説』의 내용과도 동일하다.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銅人形을 색칠할 때 藏府의 색을 칠하는 것은 『素門ㆍ經絡論』으로부터 시작했는데, 藏經은 진하게 府經은 엷게 색칠한다. 지금은 색칠할 때 大腸經은 胡粉色, 心經은 朱色, 小腸經은 丹色, 心包經은 紫色, 三焦經은 薄紫色, 腎經은 黑色, 膀胱經은 薄黑色, 脾經은 黃色, 胃經은 薄黃色, 肝經은 靑色, 膽經은 綠靑色, 督脈은 金色, 任脈은 銀色으로 색칠하여 그 색깔만 보면 어떤 藏府의 經이 흐르는 것인지 알 수 있게 하였다.”11)

銅人 K-2의 특이한 점은 手太陰肺經脈의 순행이다. 본래 중부(LU1)→운문(LU2)→천부(LU3)→협백(LU4)이 바른 순행방향이나, 운문(LU2)→중부(LU1)→천부(LU3)→협백(LU4)으로 표시하고 있다.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16)에 ‘19세기 중국 동인’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그림은 銅人 K-2와 거의 동일한 틀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 銅人에서도 手太陰肺經脈이 운문(LU2)에서 시작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Fig. 8).

Fig. 8.

(1) The picture described as 19th Chinese Acupuncture Bronze Man in 『Medical story in the pictures of a thousand years』. (2) Dongin K-2. (3) The picture of LU1 and LU2 of the Dongin K-2’s left side. (4) The BL37 of Dongin K-2. No BL39 exist next to BL37.


3) 銅人 K-3의 骨度와 奇經八脈

銅人 K-3은 우측에는 骨度를, 좌측에는 奇經八脈을 표시하고 있다. 현재 확인이 가능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骨度: 銅人 K-3의 骨度는 진한 붉은 색이나 검은색 선으로 骨度를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缺盆至𩩲骬’와 ‘𩩲骬至天樞’는 일직선상에 있지만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다. 머리부분에는 부족한 공간때문에 좌측에도 ‘耳前當耳門廣一尺三寸’과 ‘耳後當完骨者廣九寸’의 골도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특이한 점은 우측 어깨의 가로로 그어진 검은 선이다. 이 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선을 『骨度正誤圖説』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바로 ‘肩至肘’의 骨度를 나타내는 선(線)이다. 本文의 설명에 따르면 ‘肩至肘’란 椎骨에서 곡지(LI11)까지의 길이인데, 요즘 醫師들이 견우(LI15)에서 곡지(LI11)까지를 一尺七寸으로 잘못 측정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類經』의 문장을 인용하고, 그림으로 측정 방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또, 銅人 K-3에는 ‘兩乳廣九寸半, 圖翼曰當折八寸爲當’이라고 하며 兩乳間 橫寸에 대한 『類經圖翼』의 원문을 기재하였는데 『骨度正誤圖説』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에 이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

『圖翼』에 이르기를 “灸法으로는 8寸이 맞다”라고 하여, 지금 醫師들 중에 이를 張氏가 발명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滑氏가 발명하고 추론한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張氏가 발명했겠는가? 양 젖 사이가 8寸이라는 주장에 대해 왜 그런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後略).(圖翼曰灸法以八寸爲當.今醫有謂張氏發明者殊不知焉.明於滑氏發推也.豈張氏發明乎.兩乳八寸不知所以然者多焉.愚謂自膻中橫至神封二寸神封至乳中二寸左右合而得八寸.施鍼灸於胸腹者橫開之寸法依之也矣11).)

현재 체간과 사지에서 확인이 가능한 骨度의 수치는 11개로 다음과 같다. ‘橫骨上廉之內輔上廉長一尺八寸’, ‘橫骨長六寸半’, ‘兩乳廣九寸半, 圖翼曰當折八寸爲當’, ‘𩩲骬至天樞八寸’, ‘腰圍四尺二寸’, ‘膝膕以下至附屬一尺六寸’, ‘髀樞以下膝中, 長一尺九寸’, ‘腋至季長一尺’, ‘季脇至髀樞長六寸’, ‘膂骨至尾骶二十一節, 長三尺’, 腋至季長一尺(腋至季脇一尺二寸의 오류인 듯하다)이며, 남아있는 椎骨節의 명칭은 二,三,四,五,十一,十二,十三,十四,十五,十六,十七,十八,十九이다(Fig. 9). 머리에서 확인 가능한 骨度는 ‘頭大骨圍二尺六寸’, ‘兩顴相去七寸’, ‘髮際以下至頤長壹尺’, ‘耳後當完骨者廣九寸’, ‘耳前當耳門廣一尺三寸’, ‘結喉至缺盆四寸’, ‘項髮……甲乙三寸’, ‘髮所覆者顱至項……’, ‘……長一尺’의 9개인데, 『十四經輸穴指南ㆍ骨度仰人尺寸』에 따르면 ‘項髮……甲乙三寸’는 ‘項髮至背骨二寸半 甲乙三寸’이며, ‘……長一尺’은 ‘角至柱骨長一尺’이고, ‘髮所覆者顱至項……’은 ‘髮所覆者顱至項一尺二寸’이다(Fig. 10)13).

Fig. 9.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written on the Body of Dongin K-3.

(1) 兩乳廣九寸半 圖翼曰當折八寸爲當. (2) 𩩲骬至天樞八寸. (3) 橫骨長六寸半. (4) 橫骨上廉之內輔上廉長一尺八寸. (5) 腰圍四尺二寸. (6) 膂骨至尾骶二十一節 長三尺. (7)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of ‘肩至肘’ on Kotsudoseigozusetsu explains black line on the right shoulder of Dongin K-3. (8) ‘腋至季長一尺’ on the right side.


Fig. 10.

The Location of points by the proportional bone measurement method written on the head of Dongin K-3 and acupuncture points.

(1) 髮際以下至頤長壹尺 (2) 頭大骨圍二 尺六寸 (3) 兩顴相去七寸 (4) 結喉至缺盆 四寸 (5) 耳前當耳門廣一尺三寸 (6) 髮所 覆者顱至項一尺二寸 (7) 耳後當完骨者廣 九寸 (8) 項髮至背骨二寸半 甲乙三寸 (9) 角至柱骨長一尺 (10) Crossing points of Eight Extra Meridians on the left cheek.


(2) 奇經八脈과 經穴: 銅人 K-3도 銅人 K-2와 마찬가지로 『骨度正誤圖説』에서 제시한 바에 따라 五行色의 계열로 奇經八脈을 채색하였는데, 任脈은 銀色, 督脈은 金色으로 채색했다. 그리고 銅人 K-2와 비교했을 때 陽維脈은 膽經의 綠靑色으로, 陰蹻脈은 腎經의 黑色으로, 陽蹻脈은 膀胱經의 薄黑色으로, 陰維脈은 脾經의 黃色으로, 衝脈은 三焦經의 薄紫色으로, 帶脈은 膽經의 綠靑色으로 채색한 듯하다. 奇經八脈의 이름은 黑色으로 표시하였으며, 각 經脈에 속한 經穴도 소속된 十四經脈의 五行配屬에 따라 色을 구분하여 표시하였는데 穴名은 표시하지 않았다.

현재 확인이 가능한 奇經과 經穴은 Table 2와 같다. 장문(LR13), 축빈(KI9) 등의 穴名을 찾을 수 있었는데, 아마도 奇經八脈의 起始穴이기 때문에 특별히 표시한 듯하다. 그 외에 확인이 불가능한 연한 황토색 經穴 2개, 글자 1개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奇經八脈에 속하지 않는 음곡(KI10)도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또 신맥(BL62)을 申門으로 잘못 적기도 하였다. 머리 부분에서 任脈은 승장(CV24)에서 지창(ST4), 태단(GV27)과 만난 뒤 승읍(ST1)에서 끝나며, 督脈은 은교(GV28)에서 끝난다. 陽維脈은 두유(ST8), 양백(GB14)을 지나는 것과 뇌공(GB19), 풍지(GB20), 풍부(GV16)를 지나 아문(GV15)에서 끝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으며, 陰維脈은 염천(CV23)에서 끝난다. 陽蹻脈은 지창(ST4), 승읍(ST1)에서 任脈과 交會하고 사백(ST2), 정명(BL1), 풍지(GB20)를 지나 풍부(GV16)에서 끝나며, 陰蹻脈은 정명(BL1)에서 陽蹻脈과 交會하며 끝난다. (Fig. 10, 11)

The Identifiable Acupuncture Points and Meridians and Their Colors of Dongin K-3

Eight extra meridiansThe identifiable acupuncture points and meridians and their colors in Dongin K-3 (Crossing points are Overwritten)
Conception vessel (Silver)CV24, CV23, CV18, CV17, CV16, CV15, CV14, Cv13, CV12, CV11, CV10, CV9, CV8, CV3, CV2. (Silver)
Governor vessel (Gold)GV28, GV27, GV26, GV24, GV23, GV22, GV21, GV20, GV19, GV18, GV17, GV16, GV15, GV12, GV11, GV6, GV5, GV4, GV3, GV1. (Gold)
Yin heel vessel (Black)KI2, KI6. (Kidney meridian: Black) BL1(Bladder meridian: Dim gray), ST1(Stomach meridian: Tangerine)
Yang heel vessel (Dim Gray)BL1, BL62(Bladder meridian: Dim gray), ST1, ST2, ST4(Stomach meridian: Tangerine), GB20, GB29(Gallbladder meridian: Forest Green), GV16(Governor vessel: Gold).
Thoroughfare vessel (Cherry)KI11, KI16,KI17,KI18,KI19,KI20,KI21. (Kidney meridian: Black)
Belt vessel (Peacock Blue)GB26, GB27. (Gallbladder meridian: Forest Green) LR13(Liver meridian: Chrysanthemum)
Yang link vessel (Forest Green)GB35(Gallbladder meridian: Forest Green), TE15(Triple energizer meridian: Cherry), GB14, GB19, GB20, GB21(Gallbladder meridian: Forest Green), GV16, GV15(Governor vessel: Gold), ST8(Stomach meridian: Tangerine).
Yin link vessel (Dijon)KI9(Kidney meridian: Black), SP12, SP15, SP16(Spleen meridian: Dijon), LR14(Liver meridian: Green). CV23(Conception vessel: Silver)

Fig. 11.

(1) White rectangle 1 is Conception vessel, 2 is Thoroughfare vessel, 3 is Yin link vessel. (2) KI2 of Yin heel vessel, medial side of left foot. (3) GB35 of Yang link vessel and BL62 of Yang heel vessel, lateral side of left foot. (4) KI9(small circle) of Yin link vessel and KI10, left side. (5) GB29 (small circle) of Yang heel vessel and LR13 of Belt vessel. (6) GV12 of Governor vessel and TE15 and GB21 of Yang link vessel(lower circle).


고찰

1. 朝鮮 銅人의 日本 傳來

鍼灸學이 전해지려면 관련 서적과 함께 經絡圖나 明堂圖도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 1607년 이후 朝鮮에서 통신사를 파견할 때 內醫院의 良醫와 醫員도 동행하였는데, 이들이 經絡圖나 明堂圖외에 銅人의 제작방법도 동시에 전해 주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해오는 鍼金銅人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銅人으로 1741년 英祖의 命에 따라 首醫 吳志哲의 책임하에 崔天若이 鑄造한 것이다. 鍼金銅人을 鑄造하기 전까지는 內醫院에 木人이 전해오고 있었는데 파손될 때마다 새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9). 본 연구의 조사대상이 된 銅人 K-1과 銅人 K-2, 銅人 K-3 이외에도, 日本에 존재하는 銅人들 중에는 하리큐뮤지움(はりきゅうミュージアム)에 소장하고 있는 佐賀竹田家伝銅人形과 다나카 치신(田中知新)의 知新流銅人形(1660년경)17), 國立東京科學館의 銅人, 元祿五年(1692년)에 이하라 도에쯔(井原道悅)가 제작한 銅人形18) 등이 있는데, 모두 鍼金銅人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朝鮮에서 金德邦이 전해준 鍼灸學은 金德邦→나가타 도쿠홍(長田德本)→다나카 치신(田中知新)→하라 야스안(原恭庵)→키무라 켄테(木邨元貞)로 계승19)되었다고 하니, 知新流銅人形은 전통적인 朝鮮 木人과 가장 가까운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銅人 K-1과 銅人 K-2를 포함하여 위 銅人形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鍼金銅人의 고유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머리와 몸통의 비율이다. 이들 銅人은 骨度法보다 頭像을 30% 정도 크게 제작하고 대신 목을 짧게 하여 전체적인 骨度 비율을 맞추었다. 둘째, 늑골과 쇄골, 척추돌기를 크게 강조하고 胸部에 비해 腹部를 볼록하게 만들었다. 셋째, 성별을 표시하지 않았다. 넷째, 두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여 내밀고 있으며 무릎을 약간 구부린 자세로 서 있다. 마지막으로 표면에 근육과 뼈, 인대 등을 나타내어 經穴의 위치를 표시하였다는 것이다. 中國의 銅人 중에서 이러한 특징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銅人은 찾지 못하였다.

中國의 銅人들은 머리의 비율을 骨度法에 맞추고 목을 길게 만들었으며, 대체로 머리에 小冠을 쓰고 있다. 胸背의 늑골과 척추돌기를 강조하지 않아 흉곽이 밋밋하다. 또 四肢의 인대와 뼈, 근육도 표시하지 않고 腹部도 볼록하게 만들지 않았다. 中國의 銅人들은 陰莖을 표시하여 성별을 구분한 것이 특징인데, 천이나 靑銅으로 띠를 만들어 陰莖을 가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두 손의 손바닥을 펴서 몸통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많으며, 한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다른 한손은 손바닥을 뒤로 하고 있거나, 한 손을 위로 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鍼金銅人이나 銅人 K-1과 銅人 K-2처럼 양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는 中國 銅人은 찾을 수 없었다. 半跪式 鍼灸銅人은 쇄골과 가슴의 늑골을 표현하였으나 背部와 척추돌기까지 표현한 鍼金銅人의 제작기법과는 다르다(Fig. 12).

Fig. 12.

This picture is adjust the 6 Acupuncture Bronze Men into the same size.

(1) ChimGeumDongIn of Chosun, (2) Dongin K-1, (3) Iwata c.`s Kanbun Acupuncture Bronze Man. (4) Iwata D.`s Doningyo C-544. (5) Guangxu Acupuncture Bronze man. (6) Tongrentang Acupuncture Bronze man.


日本 최초의 銅人은 다케다 쇼케이(竹田昌慶)가 1378년 明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왔다는 것2)이 학계의 정설이며, 훗날 기슈번(紀州藩)의 藩醫 이와타 치유키(岩田道雪)가 1600년 쯤 간분동인(寛文銅人: Fig. 12의 3)20,21)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또 1663년에 이와타 가문의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 이와타 덴베에(岩田伝兵衛)22)가 銅人形 C-544(Fig. 12의 4)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 銅人形 C-544는 중요문화재로써 현재 남아있는 日本의 銅人 중에서 예술적으로나 학술적으로 제일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즉 다케다 쇼케이(竹田昌慶)가 明에서 직접 銅人을 가져온 후로 鍼灸學과 銅人 제작기술이 발전하게 되어 銅人形 C-544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 日本 銅人 역사의 근간이다.

하지만 다케다 쇼케이(竹田昌慶)의 銅人은 1657년 메이레키 대화재(明暦の大火)로 소실되었다고 하며,23) 이와타 치유키(岩田道雪)가 銅人을 만들 때 다케다 쇼케이(竹田昌慶)의 銅人을 참조하였다는 기록도 없기 때문에, 두 銅人을 학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현재 남아있는 中國의 銅人들과 간분동인(寛文銅人)을 비교하더라도 외형에서 유사한 점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간분동인(寛文銅人)은 대부분의 일본 銅人에서 확인 할 수 있는 鍼金銅人의 고유한 특징을 다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考察하였을 때 日本학계에서 주장하는 銅人의 대륙직수입설보다 朝鮮의 內醫院에서 사용하던 鍼灸 木人의 제작기법이 壬辰倭亂이나 조선통신사 등 여러 경로를 통해 日本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2. 위양(BL39)의 위치에 대한 고찰

日本의 鍼灸學이 朝鮮의 영향을 받았다는 또 다른 증거로 銅人에 표시된 위양(BL39)의 穴位를 꼽을 수 있다. 위양(BL39)은 그 穴位가 잘못 알려져 온 대표적인 穴 중에 하나다. 많은 醫書에서 위양(BL39)은 “在承扶下六寸”으로 誤記되어 전해왔으며, 『十四經發揮』, 『鍼灸聚英』, 『針灸資生經』, 『類經圖翼』, 『醫宗金鑑』 등 中國에서 발행한 모든 책의 經穴圖에도 오류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中國의 光緖鍼灸銅人(淸代), 嘉靖鍼灸銅人(明代), 半跪式 鍼灸銅人(明代) 등에도 위양(BL39)을 은문(BL37) 옆에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오류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언급한 책은 『東醫寶鑑』이다. 許浚은 위양(BL39)의 穴位가 본래 “在承扶下一尺六寸”인데 本文의 ‘一尺’이 누락되면서 은문(BL37)과 나란히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醫學綱目』, 『醫學入門』, 『銅人經』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銅人』에서는 ’위양(BL39)은 足太陽의 앞, 少陽의 뒤이다. 오금 바깥쪽 2개의 힘줄 사이로 나오는 곳이고, 승부(BL36) 아래 6寸이다. 이곳은 足太陽脈이 갈라져서 手少陽經에 이어지는 곳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經文으로 考證해 보면 마땅히 1尺 6寸이라고 해야 한다. 또, 經文을 살펴보면 위양(BL39)은 구부렸다 폈다하는 곳에서 찾고, 양릉천(GB34)은 무릎을 펴고 위양(BL39)의 앞쪽에서 같은 높이로 취혈한다고 하였다. … (中略) … 다만 무릎을 펴고 양릉천(GB34)과 같은 높이에 대응되는 부위이니, 穴位를 1尺 6寸로 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綱目』24)

그런데, 황룡상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알려진 銅人 중에 위양(BL39)의 穴位를 정확하게 표시한 銅人은 鍼金銅人이 유일하다고 한다1). 즉, 中國에는 위양(BL39)이 정확하게 표시된 銅人이 전혀 없으며 朝鮮에만 단 1개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17∼18세기 朝鮮에서는 中國과는 다르게 위양(BL39)의 穴位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이는 中國의 鍼灸學과 朝鮮의 鍼灸學을 특징을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황룡상의 이러한 주장은 日本의 鍼灸學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결과다. 日本의 경우, 朝鮮에서 전해진 活字와 수많은 醫書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鍼灸學 서적들을 발간하였다. 그 중 『十四經輸穴指南』(1712년), 『十四經發揮經絡兪穴骨度之圖』(1726年), 『骨度正誤圖説』(1745년), 『鍼灸極秘傳』(1780년), 『仮名讀十四經治方』(1789년) 등은 18세기 日本의 鍼灸學을 대표하는 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서적에는 銅人形總圖라는 經脈圖가 공통적으로 있으며, 여기에는 위양(BL39)을 모두 위중(BL40)의 바깥쪽에 표시하고 있다(Fig. 7). 이러한 사실들은 日本의 鍼灸學이 朝鮮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위양(BL39)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으며, 中國의 鍼灸學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특징이다. 와타나베 히로노리(渡辺祐倫)는 『十四經輸穴指南』에서 위양(BL39)의 穴位에 대하여 그림(Fig. 13)과 함께 『十四經發揮』, 『甲乙經』과 『靈樞ㆍ經脈篇』, 『醫學綱目』의 내용을 명확히 비교하면서, “委陽在承扶下六寸屈身取之.足太陽之後出於膕中外㢘兩筋間”이라는 本文을 제시하고 다음과 같이 위양(BL39)의 오류를 설명하고 있는데, 『東醫寶鑑』과 동일하게 『醫學綱目』을 인용하고 있다.

Fig. 13.

(1) BL39 of Kotsudoseigozusetsu. (2) Different locations of BL39 of Jushikeishuketsushinan. Left one is BL39 of Lingshu and Yixuegangmu, right one is BL39 of Shisijingfahui. (3) BL39 of Shisijingfahui. (4) BL39(B) of ChimGuem-DongIn (right) and locations of BL37 (A) and BL40 (C).


本文을 따르자면 위양(BL39)은 은문(BL37)과 똑같이 6寸으로, 은문(BL37)과 비교하여 穴을 표시하게 된다. 은문(BL37)은 승부(BL36)에서 수직으로 6寸 아래에 표시하고, 위양(BL39)은 은문(BL37)에서 바깥쪽으로 손가락 하나 정도 떨어진 곳에 구분하여 표시하게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 ‘膕中外㢘’이라는 것은 글의 뜻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醫學綱目』에 『靈樞邪氣臟腑病形篇』의 諸經의 合穴을 取하는 방법을 설명할 때, 위양(BL39)을 取穴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무릎을 굽히고 펴면서 穴을 찾는데 양릉천(GB34)은 무릎을 반듯하게 펴고 위양(BL39)과 같은 높이에서 위양(BL39)의 앞쪽에서 취혈하라’고 하였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위양(BL39)은 무릎을 오그렸을 때 오금 주름의 바깥 머리에 위치하고 있다. 『甲乙經』에서 “승부(BL36)의 아래 6寸에 있다”라고 한 것은 一尺의 두 글자가 누락된 것으로 一尺六寸으로 해야 한다는 설명이 더 맞다. 결론적으로 穴名의 委라는 글자는 구부러졌다는 뜻의 委이므로 무릎을 오그렸을 때 오금의 가운데 구부러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委中’이라고 한다. 위양(BL39)은 구부러진 곳의 陽分에 위치하기 때문에 ‘委陽’이라고 하며, 오금을 구부리면 오금주름의 안쪽 머리 肝經의 곡천(LR8)과 안팎으로 서로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다. 骨度法에서는 取穴할 때 髀樞에서부터 오금까지를 1尺9寸으로 하므로, 부극(BL38)은 위양(BL39)의 1寸 위에 위치하며, 무릎을 오그렸을 때 허벅지 쪽으로 올라가 있다. 부극(BL38)과 위양(BL39) 두 穴이 『醫學綱目』의 내용처럼 膀胱經의 絡脈에 위치하면 經脈이 흐르는 모습이 부드럽고 좋지만, 本文처럼 위양(BL39)과 은문(BL37)이 나란히 있게 되면 經脈의 흐름에 구부러짐이 생겨서 좋지 않다. (如本文ナレハ殷門ノ穴ト同寸法ニテ殷門ノ穴トナラヘテ点スルナリ殷門ハ直ニ承扶ノ下六寸ニ点シ委陽ハ其外ノ旁ニ一指ヲヘタテヽ点スルナリ然レほ本文ノ膕中外㢘ト云文意ニカナハス故ニ醫學綱目ニ靈樞邪氣臟腑病形篇諸經ノ合穴ヲ取中ノ委陽ヲ取辭ニ云屈伸而索之取陽陵泉者正竪膝與之齊下至委陽之前取之トアリ是ニヨツテ考レハ委陽ハ引カヽミノ外㢘橫文ノ頭ニ付ナリ甲乙經ニ承扶下六寸トアルハ一尺ノ二字缺失スルラン一尺六寸ニテアラント云此說尤可也總テ委ノ字ノ穴名ニアルハ委曲ノ委ニテ引カヽミノ中央委曲ノ處ニ付故ニ委中ト云委陽ハ委曲ノ陽分ニ付故ニ委陽ト云引カヽミ橫文ノ頭肝經ノ曲泉ノ穴ト內外相對シテ点ス如此点スルトキハ髀樞ヨリ膝中ニ至テ一尺九寸ノ法ヲ以テ浮郄ノ穴ハ委陽ノ上一寸ニ点スレハ引カカミノ上ソト股ニアリ兩穴絡脈ニ付レハ經行スナヲニシテ冝シ本文ノ如リナレハ經行屈曲ニシテ不冝也13).)

銅人 K-1은 『十四經輸穴指南』와 같이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다른 위치에 위양(BL39)을 표시하였는데, 좌측에는 『十四經發揮』에 따라 은문(BL37) 옆에 표시하였으며 오른쪽에는 『醫學綱目』에 따라 위중(BL40) 바깥에 표시하였다. 아마도 두 가지 學說을 모두 수용한 듯하다. 또 銅人 K-2의 위양(BL39)은 銅人形總圖의 내용과 동일한 위치에 표시하였다. 따라서 銅人 K-1과 銅人 K-2는 위양(BL39)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는 銅人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日本의 모든 銅人이 朝鮮 鍼灸學의 내용을 모두 수용한 것은 아니다. 日本의 銅人들은 대체로 銅人形總圖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위치에 대한 논쟁이 있던 經穴들의 위치는 製作者가 어떤 지식으로 만들었는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銅人形 C-543과 銅人形 C-544의 위양(BL39)은 은문(BL37)의 옆에 표시하며 『十四經發揮』의 학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銅人形 C-543의 대도(SP2), 복삼(BL61)과 銅人形 C-544의 대도(SP2), 태백(SP3), 공손(SP4), 복삼(BL61) 등의 혈위는 鍼金銅人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들 銅人들이 朝鮮 鍼灸學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되기도 한다25). 日本에서 해부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解体新書』가 보급된 1774년 무렵인데, 銅人形 C-543의 모습은 서양해부학의 지식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銅人形 C-543의 鑄造연대는 그 이후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런데 銅人形 C-543의 신문(HT7), 합곡(LI4) 등은 『許任鍼灸經驗方』의 訛穴에서 제시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고, 井穴들도 許任의 醫案을 반영하고 있다. 아마도 당시 日本에 널리 보급된 『許任鍼灸經驗方』의 내용을 반영하였을 가능성이 높다7).

中國에서는 위양(BL39)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하고 『醫宗金鑑』까지 계속해서 재생산되었는데, 위양(BL39)이 ‘승부(BL36)의 一尺六寸 아래 있다’고 처음 기록한 서적은 『鍼灸聚英』이다. 그 후 『醫學綱目』에서 이를 論하고, 『醫學入門』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황룡상은 그의 저서 『中國鍼灸學術史大綱』에서 『鍼灸聚英』을 ‘鍼灸僞本’이라 하여 저본이나 교본으로 삼을 수 없고 허다한 오류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醫學綱目』이나 『醫學入門』도 明代의 침구문헌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26). 이처럼 이들 서적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현재에도 中國에서 저평가되고 있으며, 과거 中國의 鍼灸書, 經穴圖, 鍼灸銅人에서도 반영되지 못하였다. 심지어 『鍼灸聚英』의 經穴圖에도 오류는 그대로 답습되었다. 이에 반하여 『東醫寶鑑』에서는 『醫學綱目』, 『醫學入門』, 『銅人經』을 인용하여 위양(BL39)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용은 『東醫寶鑑』이 『醫學綱目』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이론을 적극 수용했다기보다는 조선시대 유학 전통인 “있는 문장으로 기술하되 새로이 짓지는 않는다(述而不作)”는 저술방식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즉 許浚의 생각과 맞는 문장을 적당한 책에서 발췌한 것일 뿐이며, 아마도 許浚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朝鮮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취혈법이었기 때문에 널리 日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17세기에 이미 朝鮮은 中國과는 다른 독자적인 鍼灸學을 확립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또 經穴에 관한 정확한 지식은 銅人을 제작하는데도 충분히 반영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차이점이 中國 銅人과 朝鮮 銅人의 형태를 다르게 만든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日本이 본인들에게 맞는 銅人을 제작할 때 朝鮮 銅人의 형태를 따른 것도 당시 朝鮮의 銅人이 經穴을 표시하는데 中國의 銅人보다 그 형태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朝鮮시대에는 商業, 科學, 技術, 醫學을 천시하는 풍조로 인해 『東醫寶鑑』, 『許任鍼灸經驗方』, 『承政院日記』, 『舍岩道人鍼灸要訣』, 鍼金銅人 외에는 完備된 鍼灸學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반면에 日本에서는 醫術을 重視하였기 때문에 『鍼灸極秘傳』나 통신사의 問答기록 등 朝鮮에서 전해진 수많은 鍼灸學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17∼18세기 朝鮮 鍼灸學을 이해하고 복원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銅人 K-1은 經脈과 위양(BL39)의 위치가 좌우가 달라 醫史學의 관점에도 귀중한 遺物이며, 銅人 K-2는 『骨度正誤圖説』의 五行配屬에 따라 정밀하게 채색한 銅人이며, 銅人 K-3도 奇經과 骨度를 銅人에 기록한 희귀한 遺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經穴 고증은 주로 문헌이나 經穴圖, 經脈圖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만약 經穴 연구에 銅人들을 병행한다면 좀 더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銅人 K-1과 銅人 K-2, 銅人 K-3를 참조하여 朝鮮 鍼灸學의 연구가 좀 더 깊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더 나아가 日本의 여러 銅人들도 비교 연구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결론

銅人 K-1과 銅人 K-2, 銅人 K-3의 骨度와 經穴, 經脈을 관찰하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18세기 발행된 日本의 여러 鍼灸學 서적과 銅人들을 考察하였다. 또 朝鮮의 『東醫寶鑑』과 鍼金銅人, 中國의 光緖 鍼灸銅人, 半跪式 鍼灸銅人, 同仁堂 鍼灸銅人 등과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1. 銅人 K-1과 銅人 K-2는 內醫院에서 제작한 鍼金銅人의 고유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頭部의 骨度를 약 30% 크게 제작하였는데 목을 짧게 하여 전체적인 骨度 비율을 맞추었으며, 늑골과 척추돌기 강조하고 胸部에 비해 腹部를 볼록하게 제작하였다. 또 성별을 표시하지 않았으며, 두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여 내밀고 있으며 무릎을 약간 구부린 자세로 서 있다. 四肢에는 근육과 뼈, 인대 등을 세밀하게 나타내어 經穴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朝鮮의 銅人제작 기술이 日本에 전해졌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中國의 鍼灸銅人은 찾을 수 없었다.

2. 銅人 K-1은 좌측과 우측의 經穴, 經脈이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좌측 經脈은 『骨度正誤圖説』, 『仮名讀十四經治方』, 『十四經輸穴指南』 등에 수록된 銅人形總圖와 동일한 經脈圖를 표현하고 있으며, 우측 經脈은 『類經圖翼』의 十四經經脈圖와 같이 明堂圖를 표현하고 있어 현대의 經穴圖와 비슷한 형태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銅人 K-2는 좌우 모두 銅人形總圖를 표현하고 있으며 『骨度正誤圖説』에서 언급한 대로 經脈을 五行學說에 따라 채색하여 구분하였다. 특이사항으로는 手太陰肺經脈이 운문(LU2)에서 중부(LU1)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3. 위양(BL39)은 穴位가 잘못 알려져 온 대표적인 穴 중에 하나다. 위양(BL39)의 위치는 “在承扶下六寸”으로 誤記되어 전해왔는데, 『十四經發揮』, 『鍼灸聚英』, 『針灸資生經』, 『鍼灸聚英』, 『類經圖翼』, 『醫宗金鑑』 등 中國에서 발행한 모든 책의 經穴圖에도 오류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中國의 光緖 鍼灸銅人, 嘉靖 鍼灸銅人, 半跪式 鍼灸銅人 등에도 위양(BL39)을 은문(BL37) 옆에 표시했다. 이러한 오류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언급한 책은 『東醫寶鑑』이다. 『東醫寶鑑』에서는 『醫學綱目』, 『醫學入門』, 『銅人經』을 인용하면서 위양(BL39)의 위치가 “在承扶下一尺六寸”이라 하였다. 이후 鍼金銅人과 日本의 『十四經輸穴指南』, 『十四經發揮經絡兪穴骨度之圖』, 『骨度正誤圖説』, 『鍼灸極秘傳』에는 『東醫寶鑑』과 같이 위양(BL39)을 위중(BL40) 바깥쪽에 정확히 표시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朝鮮이 中國과 다르게 독자적인 鍼灸學을 발전시켜왔으며, 日本도 이를 적극 수용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4. 銅人 K-1의 좌측에는 『十四經發揮』의 내용에 따라 위양(BL39)을 은문(BL37) 옆에 표시하였으며, 우측에는 『醫學綱目』과 동일하게 위양(BL39)을 위중(BL40) 바깥쪽에 표시하였다. 이는 당시에 위양(BL39)의 穴位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이 공존했다는 증거인데, 銅人 K-1은 두 학설을 모두 수용하여 좌우를 다르게 표시하였다. 銅人 K-2는 위양(BL39)을 좌우 모두 위중(BL40) 바깥쪽에 표시하였다.

5. 銅人 K-3는 우측에는 骨度를, 좌측에는 奇經八脈을 표시하고 있다. 銅人 K-3의 骨度는 각각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우측 어깨의 가로로 그어진 검은 선과 頭角에서 귀 뒤를 지나 柱骨에 이르는 검은 선이다. 이 선들은 각각 ‘肩至肘’와 ‘角至柱骨長一尺’의 骨度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에 대한 설명을 『骨度正誤圖説』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또 胸部에서 “兩乳廣九寸半, 圖翼曰當折八寸爲當”과 項部에서 “項髮至背骨二寸半甲乙三寸”이라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銅人 K-3의 제작 당시에 『類經圖翼』과 『甲乙經』의 학설도 참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銅人 K-3의 奇經八脈은 銅人 K-2와 같이 經脈과 經穴을 五行學說에 근거하여 채색하고 구분하였으며 起始穴과 經脈名을 명시하고 있었다.

감사의 글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a grant ’Development of Early Prediction Model for Dementia based on Multiple Biometric Tracking Monitoring and Korean Medicine demonstration’(K18171) from the Korea Institute of Oriental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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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3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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