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국 교수님(Fig. 1)의 서거 소식을 듣고 한동안 생각이 멍했습니다.
그간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죄송함과 그 젊은 패기로 한의학 연구에 앞서 열정적이셨던 교수님께서도 흐르는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 데 대한 무상함이 순간 앞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임 교수님은 한의학 사랑으로 일생을 살아오신, 지난 세기 한의계의 역사셨습니다. 한의과대학이 출범하여 한의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도 양·한방 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외부 여건으로 인해 한의학을 학문적으로 심화해가기에 어려운 시절에, 대한한의학회 이사장을 맡아 업무를 수행해내셨고, 대한 침구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침구학회장을 맡으시며 오늘날 침구학 발전의 터전을 일구셨습니다. 한의과 대학에 경혈학교실이 개설되고 석박사과정의 대학원생이 배출되면서 대한경락경혈학회를 창립하여 창립 초대회장을 맡아 오늘의 경락경혈학회를 이끌어내신 일은 당시 한의학계와 침구학회의 분위기로 볼때 임교수님이 아니시면 엄두도 못낼 역사였습니다. 오늘에 들어 경혈학회에 기여하신 교수님의 크신 공로를 생각하며 고개 숙여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저와는 제가 한의대 본3때 처음 뵈었지요. 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당시 학생의 신분이었던 저희는 교수님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따르며 한의학의 발전적인 내일을 준비해갔던 것 같습니다.제가 대학원 전공을 침구학으로 정하여 공부할 때 교재 원문을 복사하여 대학원 수업자료로 삼아 강의해주셨습니다. 당시 뜸요법 등 쏟아내신 많은 논문들은 연구의 출발선에 있던 저희로서는 뒤에 논문을 쓸 때마다 연구의 지침서로 삼아왔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한의학회의 역할과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셨습니다.
한의과대학이 기초교육을 의학 전공자들에게 의존하던 시절 대학원 수업시간에 “본교 출신들이 기초 의학 과목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며 제자들에게 학문의 방향을 열어주셨지요.
평생 원광대에서 후학 지도의 열정을 쏟아내실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셨겠지만 제가 박사과정을 하고 있을 시절에 아쉽게도 원광대를 정리하고 동국대 한의대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교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인 이호섭 교수님은 교수님을 한마디로 “성품이 강직하시고 침구·경혈학 연구에 열정이셨지요.”라고 전해주시네요.
교수님은 1960년에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개원을 거쳐 원광대에서 10여 년, 동국대에서 17년 한의학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27년간 한의학교육의 현장에서 침구ㆍ경혈학 연구에 모든 걸 쏟아내셨습니다.
정년 퇴임 이후에 민족의학신문과 인터뷰에서 “한의원 개원시절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과 보건사회의료부 의료윤리위원을 지내면서 한의학의 현실과 위상에 ‘분통’이 터졌다. 한의학의 근본을 밝히기 위해서는 학교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이때 박길진 원광대 총장과의 인연으로 원광대 한의대에 들어선 것이 교육과 연구의 시작이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동국대에서 경혈학을 교육하시면서 임 교수님은 봉한학설과 산알연구에 몰두하셨지요. “침은 장상론과 맥진과 귀경론 등 경혈경맥론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한의학의 기전은 산알과 경맥관을 추적하는 방법으로밖에 증명되지 않는다.”고 하시며, 경락계통 구조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던 중 귀순한 평양의과대학 졸업생의 도움으로 김봉한 논문자료와 실험방법에 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겠지만, 교수님의 노력으로 제대와 태반을 이용해 3년만에 산알을 분리ㆍ배양하는 데 성공1)했다고 하셨습니다. 봉한학설과 산알연구에서 나름의 확신을 얻은 교수님께서 향후 “이쪽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한 한의학은 의학화ㆍ약학화로 변질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경락계통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남기신 경고처럼 들립니다.
임 교수님께서 남기신 정년퇴임 인터뷰에서 정년퇴직은 잠깐의 ‘쉼표’라고 하시면서 “진행하던 산알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셨습니다. 당시 임교수님께서는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지만, 제자를 양성한 지난 시절은 내 인생의 전부였고 자존심”이라고 회고하기도 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의사인 부친과 조산원인 모친 사이에 6남매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신 임 교수님은 1ㆍ4후퇴때 가족과 함께 평양에서 남하한 후 용산등학교를 거쳐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하였고, 동교에서 침구학으로 석ㆍ박사학위를 수여하신후 일생을 한의학계에 헌신하셨습니다. 훗날 “실험적 마인드가 앞선 의사 출신의 아버님은 저의 연구생활에 든든한 조언자셨습니다.”라는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평생 교수님을 옆에서 도우시던 사모님을 지난해 먼저 여의고, 그 뒤 건강관리를 해오시던 중 지난 추석 다음날에 평소 깊이 신앙하시던 하나님 곁으로 조용히 가셨습니다. 아드님인 임창수 원장과 통화하여 뒤늦게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음을 용서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저희에게 한의학과 침구학 경혈학의 온전한 학문의 연구를 위해 침구학회와 경락경혈학회를 앞장서서 창립해주시고, 꾸준히 연구해오신 교수님께서는 이제 모든 것을 저희에게 맡기시고 저희를 지켜보시는 한의학의 별이 되어계십니다.
임종국 교수님! 늘 한의학계의 밝은 희망을 열어주소서.
None.
None.
The authors can provide upon reasonable request.
저자는 아무런 이해 상충이 없음을 밝힌다.